존 녹스 (1514 ~ 1572)

<목차>
주님의 신실한 나팔수
먹장구름이 낀 암울한 시기에
마음의 닷 - 요한복음 17장
갤리선의 노예로
영국에서 목회자가 되어
전국을 순회하며 설교를
두려움 없는 녹스, 공격하는 사탄
 
 
국외의 다른 인물들
- 윌리암 틴데일 (1490 ~ 1536)
- 존 칼빈 (1509 ~ 1564)
- 존 녹스 (1514 ~ 1572)
- 블레즈 파스칼 (1623 ~ 1662)
- 존 번연 (1628 ~ 1688)
국내의 다른 인물들
- 문명래
- 박충서
- 연광숙
 

갤리선의 노예로


1543년, 사제직을 미련없이 버린 녹스는 신교의 선교활동에 적극 나섰다. 비튼 추기경은 그를 죽이려 했으나 그때 녹스는 유력한 가문의 가정교사로 채용되어 있었기 때문에 생명을 보호할 수 있었다. 이 무렵 조지 위수아트는 신교 신앙을 힘있게 전파하는 많은 사람을 개종시켰다. 이러한 일을 하던 위수아트는 생명의 위협을 받게 되었고 녹스는 그런 상황에 있는 위수아트를 보호하기 위해 좇아다녔다. 결국 위수아트는 순교를 당하였고 2달 후에 녹스를 죽이려했던 비튼 추기경도 신교도들에게 보복 살해당했다. 녹스는 살해범으로 몰리게 되어 1547년 부활절날 추기경 살해범들이 피신해 있는 세인트 앤드류스 성으로 도망해야 했다.

그곳에 있는 동안 녹스의 열정과 신학적 재능을 알게 된 당시의 설교자 존 라프는 그에게 회중들 앞에서 정식으로 목회자로서 활동할 것을 제의했다. 회중들도 만장일치로 동의했기 때문에 그는 마지못해 이를 수락하였다. 메이저 교수를 포함한 대학교의 은사들 앞에서 첫 번째 설교를 하는 동안 그는 하나님의 나팔수로 부르심을 받은 것을 스스로 확신하게 되었다. 그후 죽는 순간까지 설교를 자신이 해야 할 일로 여겼다.

“예수님의 이름 외에는 인간이 구원받을 수 있는 다른 이름이 없으며 어떠한 다른 공덕에 의존하여 구원받으려 하는 것은 헛되다. 죄는 하나님께서 심히 혐오하는 것이므로 자신의 아들 외에는 다른 어떤 희생제물로도 그것을 족히 해결할 수 없다. 오직 그리스도 한 분만이 자신을 희생으로 드릴 수 있으며 그가 단 한 번 자신을 희생제물로 드림으로써 영원한 속죄를 이루었기 때문에 누구든지 이 희생을 되풀이해 행하는 인간들은 그리스도를 다시 죽이는 자들이다.”

이러한 그의 설교는 사람의 영혼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힘이 있어 세인트 앤드류스의 많은 사람들은 신교도로 개종시켰다.

스코틀랜드 왕실은 그들의 세력을 제압하려고 프랑스 함대를 불러들여 1547년 7월에 세인트 앤드류스 성을 함락시켰다. 녹스를 포함하여 추기경 살해사건에 연루외어 피신해 있던 모든 사람들은 죄수가 되어 노예로 전락하였다. 이들은 갤리선에 감금되어 쇠사슬에 묶여 감독들의 채찍을 맞으며 강제로 노를 저어야 했다. 이러한 육체적인 고달픔 외에도 가톨릭 교회 신자들의 손 안에 들어온 신교도들에게 가하는 모욕적인 대우를 감수해야 했다.

다시 가톨릭 신자로 개종시키려는 모진 고문은 제일 견디기 어려운 것이었지만 한 사람도 개종하는 사람이 없었고 오히려 고문하는 쪽에서 포기해야 했다.

그때의 고통스러웠던 삶은 녹스를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갤리선에서 당한 고통들은 나의 심장으로부터 울음을 자아내게 한다.”

그러나 이러한 처절한 상태에서도 좌절하는 동료에게,
“사탄은 항상 환난을 통해 하나님의 백성들을 파괴하려고 시도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결국 자신의 영광을 위하여 우리들에게 승리를 주신다.”라고 위로했다. 그는 자신이 병에 걸렸지만 결코 죽지 않을 것이며 다시 세인트 앤드류스 교회에 서게 될 것을 조금도 의심하지 않았다.

그의 믿음대로 2년 뒤인 1549년 2월 영국 왕 애드워드 6세의 배려로 석방되었으며 훗날 세인트 앤드류스 교회의 목회자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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