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레즈 파스칼(1623 ~ 1662)

<목차>
인간은 생각하는 갈대다
애정이 깊은 아버지
“신을 아는 것에서 신을
사랑하는 데까지의 거리는?”
고독에서 사교생활로
마침내 하나님의 참 빛을 경험
진리의 탄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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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의 다른 인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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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광숙
 

애정이 깊은 아버지


블레즈 파스칼은 1623년 6월 19일, 프랑스의 오베르뉴 주의 수도 크레르몽 시에서 탄생했다. 아버지 에티엔트 파스칼은 자연과학에 소양과 지식이 많은 학자였고 어머니 앙트와테트 베공은 독실한 신앙인으로 자애심이 많은 부인이었다. 파스칼은 아버지에게서 명석한 과학적 지성을 계승받았고, 어머니에게서는 경건한 종교적 신앙심을 이어받은 셈이다.

그러나 그의 어머니는 그가 세 살 되었을 때 불행히도 세상을 떠났다. 파스칼에게는 세 살 위인 누이 젤베르트와 두 살 아래인 여동생 지크리느가 있는데, 아버지 에티엔느는 세 자녀를 두고 요절한 아내의 죽음으로 심히 상심하였지만 재혼은 하지 않았다. 에티엔느는 아들의 교육에 온 정성을 기울였다.

파스칼은 일찍부터 놀라운 정도의 조숙성을 보였고 천재로서의 섬광이 예리하게 빛났다. 그는 모든 사물의 이유를 알고 싶었다. 어른들이 충분한 설명을 해주지 않을 때에는 자기 자신이 그것을 탐구해 들어가는 기질이었다.

기하학에 대한 파스칼의 천재성이 12살 때부터 나타나기 시작하자 에티엔느는 아들에게 수학을 가르쳐주었고 그 당시 프랑스 일류의 수학자와 물리학자들이 모이는 과학 살롱에도 데려가 천재적인 수학자 페르마와도 친분을 맺게 해주었다.

파스칼은 어려서부터 수학과 과학에 열중하였지만 한편으로 독실한 기독교적 교육을 받았다. 일요일이면 늘 교회에 나갔고 집에서는 성경을 읽었다. 그의 아버지는 ‘종교에 대한 절대적 존경’을 가리치고 신앙의 대상은 이성의 대상이 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이성에 종속할 수 없다고 강조하였다.

파스칼은 가끔 세무 관리인 아버지의 징세 사무를 도왔다. 그러 때마다 징세에 따르는 귀찮은 계산을 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간단히 계산하는 방법이 없을까’하는 생각이 파스칼의 머리를 떠나지 않았는데 이것이 그가 계산기를 만들게 된 동기요 목적이었다. 이 생각이 머리 속에 처음으로 떠오르는 것은 19세 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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