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레즈 파스칼(1623 ~ 1662)

<목차>
인간은 생각하는 갈대다
애정이 깊은 아버지
“신을 아는 것에서 신을
사랑하는 데까지의 거리는?”
고독에서 사교생활로
마침내 하나님의 참 빛을 경험
진리의 탄압
 
 
국외의 다른 인물들
- 윌리암 틴데일 (1490 ~ 1536)
- 존 칼빈 (1509 ~ 1564)
- 존 녹스 (1514 ~ 1572)
- 블레즈 파스칼 (1623 ~ 1662)
- 존 번연 (1628 ~ 1688)
국내의 다른 인물들
- 문명래
- 박충서
- 연광숙
 

“신을 아는 것에서 신을 사랑하는 데까지의 거리는?”


1646년 1월 어느 추운 날, 아버지 에티엔느는 어떤 결투를 중재하기 위해 달려가다가 얼음판에 넘어져서 대퇴골을 삐게 되었다. 이를 치료하기 위해 두 명의 접골사가 파스칼의 집에 머물게 되었다. 이들은 열렬한 장세니즘 신봉자로 경건한 신앙생활에 생애를 바치기로 서원한 후 외과의가 되어 이웃에 대한 사랑을 실천하기에 온 힘을 기울이는 사람들이었다.

파스칼 일가는 이 두 젊은 형제의 정성에 감동하였다 이들 역시 파스칼 일가에 큰 관심을 가지면서 특히 파스칼에게 경건한 신앙의 씨를 뿌려주고 싶었다. 그들은 장세니우스가 쓴 짧은 논문 ‘내적 인간의 개혁에 관해서’ 라는 글과 상 시랑의 편지, 그리고 아르노의 책을 파스칼에게 권했다. 파스칼은 이것을 읽고 깊은 감명을 받았다. 이를 통해서 파스칼은 인간이 추구하는 최고 목표가 학문의 진리가 아니라 기독교에서 말하는 거룩한 신앙이 되어야 한다는 확신을 가졌다. 의사 형제는 파스칼에게 당신의 뛰어난 재능을 신을 위해 쓰지 않고 세속과 인간적인 학문의 허영을 위해서 쓰는 것은 재능의 악용이라고 일러주며 회심과 복음의 생활과 신에의 귀의를 역설하자 파스칼의 마음은 크게 움직였다. 그의 나이 23세 때였다. 에티엔느의 탈골 사건이 계기가 되어 파스칼은 장세니즘 신앙에 귀의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이 사건으로 파스칼이 하나님의 참 빛을 경험한 것은 아니었다. 그의 생활은 종래의 그것과 달라진 게 없었다. 그는 여전히 과학 연구에 골몰하고 계산기 제작에 열중했다. 그는 진정한 신의 자녀가 되기 위해서는 모든 것을 신에게 바쳐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나 아직 신에게 모든 것을 바치지는 않았다. 그는 신을 안 것이지 신을 사랑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는 아직 신에게서 멀리 떨어져 있었다. 이 당시의 심정을 「팡세」에서 그는 이렇게 표현했다.

“신은 아는 것에서 신을 사랑하는 데까지는 얼마나 거리가 먼가!”

파스칼이 생존해 있던 17세기, 프랑스는 유럽 정치/문화의 중심지였다. 16세기 말엽 프랑스는, 오랫동안 대립, 항쟁하던 프로데스탄트 세력과 가톨릭 세력간의 다툼이 앙리 4세에 의하여 일단 수습됨으로써 결국 가톨릭 국가가 되었다.

그 당시, 프로테스탄트 운동으로 독일을 비롯한 각국에서 루터 및 칼빈의 종교개혁이 활발히 전개되자 이에 자극받아 가톨릭 내부에서도 진지한 혁신 운동이 일어났다. 이것이 소위 가톨릭의 부흥이다. 가톨릭의 부흥은 두 방향으로 전개되었는데 하나는 제수이트를 중심으로 한 운동이고 또 하나는 포르 로와이얄 수도원을 중심으로 한 장세니즘 운동이 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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