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레즈 파스칼(1623 ~ 1662)

<목차>
인간은 생각하는 갈대다
애정이 깊은 아버지
“신을 아는 것에서 신을
사랑하는 데까지의 거리는?”
고독에서 사교생활로
마침내 하나님의 참 빛을 경험
진리의 탄압
 
 
국외의 다른 인물들
- 윌리암 틴데일 (1490 ~ 1536)
- 존 칼빈 (1509 ~ 1564)
- 존 녹스 (1514 ~ 1572)
- 블레즈 파스칼 (1623 ~ 1662)
- 존 번연 (1628 ~ 1688)
국내의 다른 인물들
- 문명래
- 박충서
- 연광숙
 

고독에서 사교생활로


1648년 파스칼 일가는 파리로 이사했다. 이때 파스칼 일가에 새로운 문제가 생겼다. 누이동생 자크리느가 수도원으로 들어가기로 결심한 것이다. 그녀는 파리에 온 후 직접 포르 로와이얄 수도원에 다니면서 신앙의 세계로 일로매진했다. 자크리느는 신의 부르심을 느꼈고 이 소명에 응답코자 수녀가 되겠다고 결심한 것이다.

그러나 아버지는 이를 허락하지 않았다. 결국 에티엔느는 “내가 죽은 뒤에 수녀가 되라”는 부탁을 했고, 그로부터 3년이 지난 1651년에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3살 때 어머니를 여의고 오로지 아버지 슬하에서 자라고 교육을 받은 파스칼에게는 견딜 수 없는 슬픔이었다. 아버지의 죽음을 통해 파스칼은 인간의 죽음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되었다. 파스칼이 인간적인 슬픔을 초극하려고 애쓰는 모습은 누이에게 보낸 편지에서 역력히 볼 수 있다.

“아버지의 죽음을 한낱 우연이나 자연의 불가피한 운명으로 보지 말고 신의 섭리로 보자. 우리는 겸허한 침묵 속에서 신의 섭리를 축복하자. 우리의 위로는 오직 진리 속에 있다.”

결국 자크리느는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다음 해에 오빠의 반대를 무릅쓰고 수도원에 들어갔다. 이때 파스칼은 동생마저 자기 곁을 떠나자 견딜 수 없는 괴로움과 참기 어려운 고독에 휩싸이게 된다.

본래 허약한 파스칼은 건강이 더욱 약화되었다. 18세 이후 하루도 고통없이 보낸 날이 없다고 말할 정도로 그는 일생동안 병고 속에서 지냈었다. 심한 두통과 변비에다가 액체는 뜨겁지 않으면 전연 마실 수가 없었다.

의사는 그에게 건강 회복을 위해서 될수록 머리를 쓰지 말고 사교와 한담의 시간을 보내라고 권유하였다. 좀처럼 결단을 내리지 못하다가 파스칼은 사교생활을 하기고 작정하였다.

그것은 전혀 새로운 세계였다. 화려한 아름다움, 세련된 취미, 즐거운 담화, 섬세한 감정. 우아한 만남….

파스칼은 이 새로운 세계에 적지 않은 흥미를 느꼈다. 그는 이 생활을 통해서 인간의 세계에 눈을 뜨게 되었고 인간이야말로 인간이 정말 연구해야 할 주제임을 알았다. 「팡세」의 예리한 인간 분석은 주로 이 시대의 경험과 관철의 산물이었다.

Copyright (c) THE EVANGELICAL BAPTIST CHURCH. All Right Reserved.
주소 : 140-011 서울특별시 용산구 한강로1가 231-23 기독교복음침례회 / 대표전화 : (02)796-0092 / 팩스 : (02)796-877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