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레즈 파스칼(1623 ~ 1662)

<목차>
인간은 생각하는 갈대다
애정이 깊은 아버지
“신을 아는 것에서 신을
사랑하는 데까지의 거리는?”
고독에서 사교생활로
마침내 하나님의 참 빛을 경험
진리의 탄압
 
 
국외의 다른 인물들
- 윌리암 틴데일 (1490 ~ 1536)
- 존 칼빈 (1509 ~ 1564)
- 존 녹스 (1514 ~ 1572)
- 블레즈 파스칼 (1623 ~ 1662)
- 존 번연 (1628 ~ 1688)
국내의 다른 인물들
- 문명래
- 박충서
- 연광숙
 

진리의 탄압


이 감격스러운 날은 이후의 파스칼의 인생 행로를 결정짓는 계기가 되었다. 파스칼은 포르 로와이얄 수도원에 들어가 성직자들과 함께 금욕적인 생활을 했다. 이른 새벽부터 저녁 늦게까지 그들과 함께 일을 하고 때때로 금식하였으며 밤새도록 기도도 하였다. 또한 성경과 교부들의 저서도 열심히 읽었다. 그는 성경이 두뇌의 학문이 아니고 심정(心情)의 학문이므로 마음이 바른 사람만이 성경을 이해할 수 있고 모든 사람이 읽는다고 해서 다 깨달을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했다.

파스칼이 이 수도원에서 생활한지 1년이 채 못되어 로마 교황청이 장세니우스파를 이단이라고 규정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포르 로와이얄 수도원은, 종교의 세속화를 추구하여 안일한 신앙에 빠진 제수이트에 대하여 복음의 순수성과 기독교의 준엄한 정신을 끝까지 지키려고 한 장세니스트의 근거지였다.

이때 파스칼은 쉬운 문체로 어려운 신학 문제를 해설하는 가운데 장세니즘의 관점을 밝히고 제수이트 신학의 약점을 폭로하는 글을 발표한다. 18통의 서간문체로 되 이 유명한 글이 「프로방샬」이다. 이 글이 발표되자 이는 독자들 사이에 큰 화제가 되었고 대중을 매혹시켰으나 제수이트의 책략이 주도면밀하여 장세니스트에 대한 박해는 더욱 심해졌다. 결국 파스칼은 집필을 단념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고 이와 같은 논쟁을 사랑과 겸허를 잃을 뿐만 아니라 진리에 아무 도움이 못 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이처럼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진리가 탄압을 받는 경우는 비일비재했던 것 같다. 참된 교회는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골로새서 1:24)라는 말씀같이 항상 어떤 형태로든 고난이 뒤따른다. 진리의 세속화란 결국 진리의 변질을 가져오기 미련이며 대중이 좋아하는 것은 진리와 거리가 먼 것임을 세상 사람들은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 뒤 파스칼은 무신론자와 자유사상가들을 공격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변증하는 글을 쓰기로 결심하여 1657년부터 집필을 시작하나 건강이 악화되어 미완성으로 끝나고 말았다. 1662년 운명할 때까지 그는 때때로 떠오르는 생각을 메모지에 적기도 했고 스스로 글을 쓰기가 힘들 때에는 그의 조카나 하인을 시켜 적도록 불러주기도 하였다. 파스칼은 산보 도중에 간혹 종이가 없으면 손톱 위에 쓰기도 했다. 이 글들을 편집할 만한 힘도 없었던 파스칼은 39세의 젊은 나이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

그의 방에는 ‘기독교 변증론’을 위한 메모가 수북히 쌓여 있었다. 훗날 친구와 친척들이 이 미완의 단장을 정리, 편집해서 출판하였는데 이것이 「팡세」이다.

“자신의 비참을 모르고 신을 알게 되면 오만해진다. 신을 모르고 인간의 비참을 알게 되면 절망에 빠진다. 예수 그리스도를 알게 되면 그 중용을 취하게 된다. 왜냐하면 그를 통해서만 신과 인간의 비참을 함께 알 수 있기 때문이다.”(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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