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번연 (1628 ~ 1688)

<목차>
땜장이 청년의 중생
소년 번연
죄의식
율법의 사슬
버림받은 죄의 괴수
유혹 또 유혹
넘치는 은총
받은 은사대로
감옥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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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의 다른 인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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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 번연 (1)


“내 아버지의 조상들은 나라에서 가장 낮고 비천한 계층에 속해 있었다..…나는 자랑할 만한 명문의 혈통도 고귀한 신분도 못된다.…이 문을 통해서 하나님은 나를 세상에 끌어넣으셨고, 복음으로써 그리스도와 함께 하는 은총과 생명을 주셨던 것이다.”(죄인에게 주시는 은총 2)“

존 변연은 1628년 영국 베드포드 근처 엘스토우 동네 초가 단칸방에서 태어났다. 동네에는 겨우 31가구가 살고 있을 뿐이었으며, 가까운 베드포드 읍의 인구도 1,000명밖에 안될 정도로 외딴 농가였다. 엘스토우 동편 그의 집 뒷동산에 오르면 마을이 훤히 내려다보였다.

어린 시절의 번연은 몹시도 짖궂었다. 부모가 가난한 데다 바쁘기까지 해서 제대로 돌보지 못하는 아이들이 흔히 그런 것처럼, 그는 들에 풀어놓은 망아지와 같았다. 일을 되는 대로 저지르고 욕도 하며, 신을 모독하는 말과 거짓말을 예사로 해댔다. 그렇게 하는 것이 어느새 몸에 배어 동네에서 못된 짓 하기로는 그를 따를 아이가 아무도 없었다.

그의 아버지는 번연을 엘스토우의 소학교에 보냈다. 정식으로 졸업은 하지 못했지만 그 덕분에 그는 읽고 쓰는 것을 겨우 익힐 수가 있게 되었다. 극빈자에 속하는 가정에서 번연이 읽고 쓸 수 있었다는 것은 그 당시 대단한 일이었다. 그러나 그는 부끄럽게도 모처럼 배운 것들은 뒤돌아서면 다 잊어버리곤 했다.

어린 번연은 틈틈이 장차의 벌이를 위해 아버지로부터 땜장이 일을 배워야 했다. 장날이면 땜일을 하는 아버지를 따라 장터로 나가 장사꾼들과 마술사, 광대들, 건달패들을 구경하였다. 또한 그는 장날 노전에 쌓아놓고 파는 싸구려 책들을 뒤적이며 읽어보곤 했는데, 그 곳에는 흥미진진한 모험담들이 가득 실려 있었다. 특히 햄튼의 「베비스」며 「그리스도 왕국의 일곱 참피온」 같은 중세의 기사들에 관한 이야기가 보통 사람의 삶 속에 등장하므로, 골목대장 땜장이 아들 번연은 그 이야기를 속에 푹 빠져버렸다.

번연이 열두 살 때는 흠정역 성경이 나온 지 30년밖에 되지 않았다. 번연이 청년기에 이르기까지 그는 성경책을 종종 읽었다. 그 밖에 청교도들이 쓴 평범한 설교나 가정적인 도덕책, 신의 인도와 극적인 심판이야기, 폭스의 「순교자」와 같은 이야기들은 즐거운 읽을 거리였다. 더구나 어린 시절 그나 즐겨 들은 민담/야화 등은 그의 상상력을 가득 채워 주었다.

흔히 개구쟁이들은 부모의 눈이 미치지 못하는 곳에서 엉뚱한 짓을 하고 , 더러는 위험을 빠지기도 하는데 번연도 예외는 아니었다. 여느 촌 사내애처럼 번연은 들판으로, 산으로, 강으로 쏘다녔다. 따뜻한 햇볕을 쐬기도 하고, 새가 화살을 맞고 나무에서 거꾸로 떨어지는 광경을 놀란 눈으로 물끄러미 바라보기도 했다. 때로는 집 가까운 샛강에서 자주 놀았는데, 강 수렁에 빠져서 죽음 직전에 헤매기도 했다. 어떤 날 들판에서 놀고 있을 때, 살모사를 만나 막대기로 때려 죽이고는 재빨리 뱀의 입을 열어 젖혀 맨손의 독니를 뽑아버렸다. 너무나 철없는 짓을 해서 그는 목숨을 잃을 뻔한 것이다.

이와 같이 번연은 부모 간섭없이 마냥 험한 놀이에 젖어 때로는 위험한 고비를 넘기기도 했다. 또 한번 베드포드를 끼고 흐르는 큰 오즈 강에서 보트를 타다가 강물에 빠져서 구사일생으로 겨우 살아난 적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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