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번연 (1628 ~ 1688)

<목차>
땜장이 청년의 중생
소년 번연
죄의식
율법의 사슬
버림받은 죄의 괴수
유혹 또 유혹
넘치는 은총
받은 은사대로
감옥생활
 
 
국외의 다른 인물들
- 윌리암 틴데일 (1490 ~ 1536)
- 존 칼빈 (1509 ~ 1564)
- 존 녹스 (1514 ~ 1572)
- 블레즈 파스칼 (1623 ~ 1662)
- 존 번연 (1628 ~ 1688)
국내의 다른 인물들
- 문명래
- 박충서
- 연광숙
 

받은 은사대로 (2)


아내 메리가 죽자, 번연은 1659년에 믿음의 신도 엘리자벳을 맞아 결혼하고, 메리 소생의 네 자녀를 그녀에게 맡겼다.

그에 크롬웰이 죽고, 영국 의회가 해산되었다. 이듬해에 스튜어드 왕조가 복구되어 찰스 2세가 등극했다. 찰스 2세는 성공회와 청교도간의 화해를 모색했다. 그러나 청교도들이 예배의식을 달리함으로써 행정 책임자들과의 사이에 결정적으로 금이 가게 되었다.

베드포드 상하 각 행정 책임자들이 상공회의 의식서를 의무적으로 수락하도록 하는 명령을 전달했다. 그러나 청교도 목사들은 영국 국교에서 축출되고, 신도들은 큰 고난을 겪게 되었다. 국교 예배가 아닌 사사로운 집회는 모두 금지되었다. 그리고 집회를 해산하지 않을 때는 구속하였다.

기포드 목사의 후임으로 왔던 버튼 목사는 평소 번연을 기름부음 받은 자로 존경하고 있었다. 그는 1660년 번연을 후계자로 삼을 것을 부탁하고 세상을 떠났다. 병고로 목사를 잃고 교회 지주의 법적 처리로 예배드릴 장소도 잃은 신도들은 가정에서 모이기도 하고, 마굿간 또는 길섶 등 하나님께서 그들의 영혼을 찾아주시는 것이라면 그 어디에서나 실망치 않고 모여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번연은 국교(성공회)의 명령에 순응할 수 없었다. 그는 「기도에 대한 강화」라는 논문을 발표함으로써 강력하게 반대 의사를 표명했다. 번연의 적은 더욱 많아졌다. 가는 곳마다 어두운 그림자가 따랐다. 그는 정치에 무관심했다. 결코 왕정을 비난하는 따위의 행위는 하지 않았다. 그러나 영국 국교가 허락하지 않는 집회를 했다. 그것은 오로지 값없이 주시는 구원을 전하는 것일 뿐이었다. 신도들이 손에 손에 성경을 들고 번연의 성경 해석을 듣는 일종의 성경공부 반이었다.

11월 12일 로워 삼셀 촌 농가에서 번연이 “네가 인자를 믿느냐”(요한복음 9:35) 라는 구절을 읽고 설교하려 할 때였다. 문이 열리면서, 경관과 지방 행정관의 부하가 존 번연의 체포영장과 수갑을 들이밀었다. 번연은 연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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